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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Travel』/200804 보성,강골마을'에 해당되는 글 2

  1. 2008.04.23 전남 보성, 득량 강골마을로의 추억여행 2편
  2. 2008.04.23 전남 보성, 득량 강골마을로의 여행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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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에서의 둘째날이 밝았다.

날씨가 좋았다면 스케줄대로 일출을 담기위해 득량만을 찾아갔겠지만, 잔뜩 낀 구름에 일출촬영은 포기하고  바로 보성녹차밭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스케줄 조절이 안되고 서로의 콜(call)이 부족했던 듯하다.

먼저 일어났던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벌써 보성녹차밭으로 향하고 후발대는 부랴부랴 다시 버스를 불러 찾아가게 되었다.

서로간에 의견조율이 되었다면 ... ...

음, 너무 따뜻한 곳에서 푹~ 잠을 잔 내 잘못이 크긴하다만...^^;


위원장님의 말을 빌자면,

강골마을의 아침은 '닭 울음소리'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시간 개념없는 닭들은 하루종일 울어댄다.

옛날 우화나 이야기를 보면 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다고 했는데...

닭들은 아침뿐만 아니라 시간 개념없이 아무때나 '꼬끼오~' 한다...

'닭 울음소리'가 그칠 때 즘이면 '구~ 구~'하는 산비둘기 소리가 들리고,

그 다음엔 비로소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종다리', '때까치' 등의 울음소리가 되면서 아침을 맞게된다고 한다...


정말 맑고 고운소리 ? ( ** 피아노~ ) 가 항상 귀를 즐겁게 해주는 곳이다.



어쨌든 다시 보성녹차밭에 왔다.

2004년 10월에 가족과 남도여행하면서 처음 찾았을 때의 그 감동이란...

괜히 두 팔만 벌려도 상쾌한 녹차향이 내 몸으로 흡수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늦가을에 다시 찾았을 때는 이른 아침의 알싸한 추위와 녹차밭 입구의 전나무숲길로 쏟아지는 햇살에

다시금 감동의 도가니탕에 흠뻑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그때의 감동을 다 담아내지 못한 내 신세를 한탄하며 지금까지도 그때의 사진은 잠들어있다. -.-;


이번에 도착한 보성녹차밭은 그때의 그 감동들보다는 왠지 차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통 강골마을에서 하룻밤 자고 와서일까...

지난 주에 다녀온 청산도의 슬로우시티의 영향이었을까...


아직은 새싹이 막 올라오는 시기라서 초록의 푸르름은 적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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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보성 1다원 녹차밭만 방문했었는데 이번에 제 2다원도 들러보게 되었다.

비록 아침식사시간 때문에 10분이라는 너무나도 촉박한 시간이 주어져서 저 위까지 한 달음에 달려갔다 오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렸지만...

몇 컷의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보성 1다원은 가파르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면, 2다원은 광활하고 시원한 느낌...

누구처럼 두 팔 벌려서 CF라도 찍어보고픈....

아니 연인과 걷고 싶은...

(아 ~ 나 결혼했으니 아내와 두 아이들과 걸어봐야지..)


녹차밭.

5월에 다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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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항상 배가 고프다. -.-;

오늘 아침은 지난 밤의 동동주를 씻어낼 바지락 북어국과 각종 봄나물, 꼬막, 김치, 숭어찌개 등등이 나왔다.

듣기로는 이 반찬들은 한 곳에서 만드는게 아니라 각 주민댁에서 한 가지씩 모여서 만들어진 상차림이란다.

오~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고...

역시나 오늘 아침도 반찬이 모자랄 정도로 싹~싹 비웠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서 아침일찍 기상하면서 못한 세면과 양치질, 볼일을 보고나니...

헉~ 아무도 없다....   길손님과 나만 남았다...

에이~ 넘어진 김에 쉬어가잔다고... 아치실댁의 시원한 툇마루에서 잠이나 자자......... 라는 생각을 할 즈음 몇 분이 남아 계시길래

따뜻한 봄날 아침의 담소를 나누었다.


아치실댁도 그렇지만 마을의 모든 가옥들이 보물을 숨기고 있었다.

전통이라는 보물, 추억이라는 보물들을 한 가득 숨기고서 찾아주기를 바라는 듯 싶었다.

아치실댁의 벽장에서 만난 서책을 보면서 아~ 이래서 이 댁에서 대법원장이 나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회관의 정자로 가보니 강골마을 위원장님께서 남겨진 사람들만을 위해 숨겨진 보물을 보여주시겠단다...

오옷~ 뭘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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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사용하던 명함.

각종 서책들... 문서들...

재봉틀, 병풍, 고가구, 옛날 설탕통 등등등....

보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와~ 감동. 감동.


점심시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계속 구경하고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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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량 강골마을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팥죽'이다.

서울/경기지역에서의 팥죽이라하면 단밭죽에 옹심이알이나 밥이 들어가는 걸 말하는데,

강골마을에선 칼국수가 들어간다.

직접 손으로 빗어서 만든 칼국수라서 면이 쫄깃쫄깃하고 맛이 좋다.

게다가 가스불이 아닌 저렇게 장작을 이용해서 불을 때니 밥맛이 아니좋을 수가 없을게다.

달콤한 냄새가 도저히 기다릴 수 없게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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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서 차승원 주연의 '혈의 누'촬영장이었던 곳으로 찾아가봤다.

강골마을에서 '혈의 누', '태백산맥' 등의 영화도 촬영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혈의 누' 촬영장이었던 곳으로 가는 길도 왠지 스산하고 음침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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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 '이정민'위원장님과 잠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보성군에서는 2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강골 전통마을 조성사업'을 진행하려 했다고 한다.

강골마을 주민들에게 그 돈은 분명히 큰 유혹이 되었을 것이다.

당장의 이익이 눈에 보이는데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위원장님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전통을 보존하고 공존하면서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했으며

지금의 두 그루 철쭉 축제도 그 연장선상이 있는 듯 했다.


이용욱 가옥 담 옆의 소리샘도 전통그대로 복원을 하지 못하고 한쪽 모서리를 각지게 만들고

우물 담을 높게 쌓아서 물이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과연 200억원이라는 자금이 들어와서 전통보존이라는 이름으로 정말 제대로 된 모습으로 변신이 될까...

단지 여타 정보화마을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 자금만 들이 붓고는 오히려 역효과만 보게 되는건 아닐까...


위원장님의 마을보존이라는 확고한 의지가 있기에 강골마을은 새소리 요란하고 바람소리 시원한

우리네 시골 부모님댁같은 그런 느낌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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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골목,

쉬고 싶은 마루.

자전거타고 싶은 마을...


나는 이곳 강골마을의 마을회관을  마음의 안식처, '강골역'으로

위원장님을 '강골역'을 지키는 외로운 역장님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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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가면 바람에 스치듯 지나쳐버리는 추억으로 잊혀지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담쟁이 뒤덮은 담장, 벚꽃, 우물, 동백꽃, 그리고... 주민 여러분들...


다음엔 우리 두 꼬맹이들 데리고 다시 찾아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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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에서의 아쉬운 1박 2일을 뒤로하고 우린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서울로 향했다.

중간에 전주에 들러서 '토마스'님이 소개해 주신 '한국식당'에서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올라올 수 있었다.

20여가지가 넘는 저 반찬들이 밥을 다 먹고나니 초토화되어 버렸다.

함께 한 우리테이블 분들 대단하지 않은가.. ^^ㅋ



▶ 주변 볼거리 ◀


[득량만 해안 일주 도로]

한적한 바닷가 2차로 도로를 따라 공룡알 화석지가 있는 비봉리까지 달려보자. 황톳빛 물결이 찰랑이는 득량만 갯벌에선 피조개,새조개,꼬막 등이 많이 난다.
선소마을에는 갯벌 체험장이 있다. 비봉리 해변 3㎞ 구간에 걸친 공룡알 화석지는,10여개의 공룡알 둥지와 100여 개의 공룡알 화석이 발견되었던 곳. 올해 말 관찰로 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현재 육안으로는 화석지를 구분해 내기가 힘들다. 일주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율포해수녹차탕이 있는 회천면까지 갈 수 있다.

[해평리 돌장승]

해평리 조양마을 입구에 여상(女像)인 상원주장군과 남상(男像)인 하원당장군 상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조양마을은 득량만 방조제 건설로 얻어진 간척평야 우측에 위치하고 있으며,조선시대 해창(海倉)이 있던 곳이다.

장승은 조세 수송의 무사 기원과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당산나무를 보고 섰을 때,왼쪽에 하원당장군이 위치하고 있는데,턱 부분의 돌이 잘려나간 흔적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하원당장군 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다 할머니인 상원주장군에게 맞아 턱이 나갔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오봉산 칼바위]

다섯 개의 봉우리와 기암괴석이 만들어 낸 경관이 특출한 오봉산. 그 중 해발 340m의 칼바위는 새의 부리 같기도 하고,잘 벼린 칼 모양 같기도 하다.

높이 30여m. 칼바위의 구부러진 안쪽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면,고승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이곳 주민들 사이에서는 한때 오봉산에서 수도했던 원효대사의 모습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칼바위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득량만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칼바위까지는 도로변에서 0.6㎞,왕복 1시간 코스다.




 ▶ 교 통 ◀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순천IC에서 내린다. 벌교를 거쳐 보성 방면으로 가는 2번 국도를 이용한다.

예당휴게소와 득량농협 주유소를 지나서 좌회전, 득량면으로 들어가는 845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주유소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길 오른쪽 보건소 옆에 득량 정보화마을 간판이 보인다.


 

[찾아오는 길]


호남고속도로→ 서순천IC → 순천방면 22번 국도→보성 방면 2번 국도 → 득량면 방면 845번국도 → 득량마을

서해안고속도로→ 해남,순천 방면 2번 국도 → 보성 방면 18번 국도 → 득량면 방면 845번국도 → 득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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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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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은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에 있는 전통 한옥마을이다.

강골은 강동()으로 부르기도 한다. 11세기 중엽 양천허씨가 처음 터를 잡은 뒤, 원주이씨를 거쳐 16세기 말에 광주이씨()가 들어와 정착하면서 광주이씨 집성촌이 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가옥의 대부분은 19세기 이후 광주이씨 집안에서 지은 것들이다.

마을은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30여 채가 오봉산()을 바라보면서 작은 골짜기 안에 접시 꼴로 똬리를 틀고 앉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벚나무·목련·석류나무 따위 고목이 솟아 있고, 가옥과 가옥 사이에는 담쟁이덩굴과 대나무로 뒤덮인 돌담길이 이어지면서 한국의 전형적인 씨족마을 잘 보여준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한옥마을 가운데 참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규모가 30여 채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3채의 가옥과 1개의 정자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금재()가옥, 이용욱()가옥, 이식래()가옥, 열화정()이 그것이다. 이 건물들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세운 것으로, 안채·사랑채·행랑채·헛간채와 안마당·사랑마당 등을 갖추었다.

큰 가옥마다 앞뜰에 연못을 만든 것도 특징인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이용욱가옥에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솟을대문이 솟아 있는데, 담장으로 막아서 사랑마당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였다. 마을 뒤 숲 가운데 자리잡은 열화정은 둘레의 숲(자연)을 그대로 살려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는 전통적인 한국 조경의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 발췌 : 네이버.


강골마을을 가기 일주일전에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엘 다녀왔다.
급하게 빨리빨리를 외치고, 인스턴트를 즐겨찾는 우리들에게 슬로시티는 어쩌면 답답함의 극치일지도 모른다.
왜 천천히 걷지를 못하는 것일까....
그럴 여유가 없어서 일꺼다.
남들 한 발자국 걸어갈때 자신은 두 발자국을 걸어가야 승리한다.
시장경제, 민주주의라는 정글숲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천천히'라는건 뒤쳐짐을 의미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여행패턴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짧은 일정속에서 많은 곳들을 빨리 돌아보고 눈도장 찍어야
여행 다녀왔다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찬찬히 돌아서 생각해보자.
과연 남는건 ???

"여행"은 나를 재충전하고 새로움을 배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시간조차도 없이 지나쳐야 한다면 그게 무슨 여행인가...

청산도 슬로시티 여행뿐만 아니라 이번 보성 강골마을로의 여행은 그런면에서 아주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이번 보성 강골마을의 방문은 '제 3회 두 그루 철쭉 축제'의 일환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약간 의문이 가는 것이 있었다.
'철쭉나무 두 그루로 축제를 한다고?'

혹자는 그런 비아냥을 늘어놓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슨 나무 두 그루로 축제를 하느냐고...
온 산을 뒤덮으며 화려하게 피어있는 진달래, 철쭉 축제를 알고 있는 사람들한테 겨우 두 그루의 나무로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고...
홍보 팜플렛에 있는 강골마을 '이정민 위원장님'의 말을 빌어보면,
발상의 전환, 고정관념의 전환을 주장하신다.
두 그루의 철쭉 나무로도 축제를 할 수 있다는....
단지 두 그루의 철쭉나무는 전통을 향한 매개체임을...

그 두 그루의 철쭉 나무는 이정민 위원장님 댁 한켠에 서 있다.
햇살이 잘 드는 사랑채의 오래된 풍금, 아코디언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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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골마을까지는 꽤 오랜시간 좁은 버스안에서 참을 인(忍)자를 되뇌여야 비로소 도착하는 조금은 먼 곳이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점심먹을 때가 되었으니...

강골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은 보리밭과 유채밭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고창 청보리밭, 제주 유채꽃밭을 가지 않아도 강골마을에서 소원풀게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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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을 회관 앞의 커~다란 느티나무와 나무에 매달린 '종'이다.
시골마을에는 어느마을이든 마을회관이나 마을 초입에 느티나무 하나씩은 꼭 있다.
그 나무 그늘에서 농삿일에 지친 농부들이 잠시 쉬었다 들어가거나 막거리 한 사발씩 들이키곤 하는
모임의 장소이기도 한데... 역시나 강골마을에도 꽤 오래되 보임직한 나무가 서 있었다.

강골마을은 지형이 참 좋다...
초승달형으로 쏙 들어온 지형으로 포근한 엄마 품속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감상에 젖어 있는 사이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버스 안에서 오랜 시간동안 몸은 옴짝달짝하질 못했지만, 왠지 뱃속은 밥달라고 보채고 있다.
마음보다 몸이 더 먼저 반응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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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할 건 없지만, 진실함이 묻어있는 시골 밥상은 어릴적 친구네서 먹던 그 밥맛이었다.

어릴적엔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도 "**야~ 밥먹어라...."하면 종종~ 따라가서 같이 먹었던...

내자식, 남의 자식이 따로 없이 함께 어울려서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던 생각이 문득 든다.

밥맛도 밥맛이려니와 시장이 반찬이었기에 한 상이 금방 빈 그릇들만 뒹굴고 있었다.

벌써부터 함께한 일행의 대단한 식성이 강골마을의 곡간을 비우면 어쩌나.... 걱정아닌 걱정도 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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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우리가 머무를 숙소(아치실댁)에 짐을 풀어놓고 본격적인 강골마을 체험을 위한 준비를 했다.

첫번째 체험은 대통밥 만들기!

대나무 통을 잘라서 그 안에 쌀과 밤,대추,은행을 넣고 물에 적신 한지로 위를 봉한 다음에

커다란 솥에 쪄내면 되는데... 시간이 오래걸리기 때문에 지금 해놔야 저녁에 먹을 수 있다.


대통밥은 전남 담양에 갔을 때 몇 번 먹어봤다.

워낙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들이라 그 곳의 특별메뉴가 아닌 일반 메뉴로 정착한 듯 하다.


강골마을 사무국장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조를 나눠서 체험을 시작했다.

대나무통의 2/3가량 쌀을 넣고 물은 쌀 위로 약 1cm가량 올라오도록 채운다.

그 위에 밤,대추,은행을 적당량(?) 넣고 물에 흠뻑 적신 한지로 위입구를 봉한다.

자기꺼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름을 쓴다.

솥에 대나무를 넣고 푹~ 쪄낸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대통밥을 만들면 되는데... 대나무의 특유한 향으로 대통밥은 혀와 코를 자극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만든 대통밥의 아래가 약간 설익어서 다 먹느라 고생했다...

인증 사진을 담는다고 중간에 솥뚜껑을 열었었는데 그것때문에 제대로 익지를 못한 듯 하다.

이자리를 빌어서 설익은 대통밥 드신 분들, 넘 죄송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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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 가마솥에서 대통밥이 익어갈 동안 우리는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무국장님의 인솔을 따라다니며 강골마을 전통가옥을 둘러보고

그 가옥의 특징들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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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이웃집같은 대문을 열어 들어가보니 어릴적에 보아왔던 것들이 그대로 있다.

저 무쇠 가마솥으로 소 여물을 쑤는 것인지 아님 사람이 사용하려는 것인지...

흙벽이 떨어지고 창호지가 떨어져나간 창살, 툇마루 아래에 놓여있는 커다란 늙은호박은 누굴위한 것인지...

시간이 멈춘채로 걸려있는 괴종시계가 말해주듯이 나는 내 어릴적의 추억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세 집이 붙어있는 담 사이에 우물이 하나 있다.

이 우물 하나로 형님네도 쓰고, 동생네도 쓰고... 우리도 쓰고...

우물을 길러 오다가 만나면 인사라도 나누고...

참 정겹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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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래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60호)이다.
곳간은 기와집이고 안채는 초옥이다. 장독대도 기와를 얹었다.

이집은 곡식과 장을 중시하는 남도의 특징이 여실히 들여다보인다.

초가가 더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에 안채를 초가집으로 했을 거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남도 쪽에서는 가장 큰 5칸 집이다.

뒤란의 대문을 통과하면 꽃밭이 조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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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제159호


이용욱 가옥(중요민속자료 159호)이다.

넓은 평야와 해안이 가까워 강골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수지리상 터가 좋은 곳이다.

솟을대문을 삐이걱 열고 들어서자 "이리 오너라" 라고 한 번 불러봐야 싶을 듯 하다.

조선시대 영감 호칭을 받은 정3품 이상의 벼슬을 얻어야 세울 수 있었다는 솟을대문은 집의 기품을 한껏 고조시킨다.

안채, 사랑채 ,곳간채, 문간채가 규모 있게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에는 이진만의 한시가 기둥마다 쓰여 있다.

좌측에는 곳간채, 중앙에 안채, 오른쪽에는 종가집 제실이 있다. 제실 앞마당에는 돌로 쌓아올린 우물이 있다.

특히 이 집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행랑채, 중간문채, 사당과 연못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이 지방 사대부 집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민속자료라 한다.

안방마님 방에서 밖을 보면 솟을대문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는 안방마님 방을 볼 수가 없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정말 아름답다. 행랑채 앞에 마을동산이 있고, 그 뒤로 오봉산이 바로 눈앞에 놓여있는 듯 보인다.

땅을 돋아 원근감을 살려 지었다는 이집의 조경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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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소리샘이 있다. 이 우물은 이용욱 가옥과 이금재 가옥 사이에 놓여있다.

마을사람들의 빨래터이기도 한 이 우물은 동네 소문의 창구역할을 했다. 이용욱 가옥의 담장에 네모난 구멍 하나 뻥 뚫려있다.

양반은 담장에 뚫린 이 구멍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엿듣고, 마을 사람들은 대감 집을 엿보고 하는 양반과 마을주민들과의 의사소통공간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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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정(민속자료 제162호)이 바로 눈앞이다.

1845년(조선 헌종 11년) 이진만이 지역 동량들을 길러내고자 마련한 정신수양의 도장이었던 열화정은

이관회가 수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일섭문'이라 새겨진 일각대문에서 바라보는 열화정은 울울창창한 대숲과 연못,

수백 년 된 고목에 휩싸여 적막감이 감돈다.

소박한 구조의 건물로 주변 정원 시설과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곳에서 앉아 있으면 저절로 시상이 떠오르고 그림이 그려질 듯 하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열화정은 은근한 아름다움이 있다. 마을 숲 깊숙한 곳에 자리한 열화정은 강골마을의 백미다.

정자는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ㄱ자형의 누마루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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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정 옆으로 난 대나무 숲길을 걸었다. 봄 햇살이 대나무 사이로 드리운다. 곧게 뻗은 대나무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대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바람에 부딪히는 "사사삭~" 대나무잎의 소리가 들린다.

그 바람에 내게로 와서 온갖상념을 갖고 가버리는 듯 하다.

문득 재미있는 동화가 생각이 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난 뭐라고 한 번 외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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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님 댁에서 다도체험을 했다.

지난해 5월에 제주도 오설록 녹차밭에 갔었을 때 '녹찻잎 따기'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어린 녹찻잎을 따서 덖음과 유념과정을 거쳐서 수분이 빠지는 그 9번의 반복과정을 통해서 질 좋은 녹차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덖음 과정은 고온의 가마솥에서 녹찻잎을 찌는 과정이라서 구경만 해봤고,

유념 과정은 찐 녹찻잎을 손으로 밀어서 수분을 빼는 과정으로 녹찻잎이 정말 부드럽게 변한다.

이렇게 유념과정 체험까지 끝내고 나서 다도(茶道)체험까지 했는데...

그 때의 체험이 지금 내가 녹차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녹차티벳은 가장 하품(下品)으로 좋은 녹차를 마시게 되면 향부터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녹차는 3번째 우려낼 때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첫번째는 70℃의 물로 우려내서 마시고, 두 번째는 75℃, 세번째는 80℃로 온도를 올리게 된다.

약 2분가량 녹찻잎을 우려내어 연한 노란색을 띌 때 가장 좋은 맛을 낸다고 한다.

너무 오래 우려내거나 높은 온도로 우려내게 되면 녹차의 카테킨 성분이 많아져서 떫은 맛을 내게 된다.


예전에 인사동에서 중국전통차를 마신 적이 있다.

우리의 다도를 보면 물이 흘리지 않도록 조심조심하고 정갈한 느낌이 나는데...

중국의 다도는 녹차의 잔이 식지 않도록 뜨거운 물을 붓고 뚜껑을 덮고 하면서 물을 아래로 흘려 내보내게 되는데...

우리와는 많이다르다는걸 느끼게 했다...

아~ 매우 비싸다는 중국차(10년도 더됐다는....)를 마셨는데...

무슨 지푸라기를 먹는 느낌이랄까...

아직 내가 차를 잘 몰라서 그런가보다...


녹차를 처음으로 생산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중국과 인도이다.
 후 일본 ·실론 ·자바 ·수마트라 등 아시아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중국에 이어 일본이 녹차 생산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차는 제조과정에서의 발효 여부에 따라 녹차 ·홍차 ·우룽차로 나뉜다. 어떤 차를 제조하든 차나무의 잎을 원료로 사용한다. 새로 돋은 가지에서 딴 어린잎을 차 제조용으로 사용하며, 대개 5월 ·7월 ·8월의 3차례에 걸쳐 잎을 따는데, 5월에 특히 24절기 중 곡우 전에  딴 것이 '우전차'로써 가장 좋은 차가 된다. 차나무는 상록수로 비교적 따뜻하고 강우량이 많은 지역에서 잘 자란다. 녹차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딴 잎을 즉시 가열하여 산화효소를 파괴시켜 녹색을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수분을 증발시켜 잎을 흐늘흐늘하게 말기 좋은 상태로 말린다. 예전에는 사람이 가마솥에서 직접 잎을 손으로 비벼 말렸다. 그 후 가열을 계속하여 대부분의 수분을 제거하여 어느 정도 바삭바삭하게 만든다. 근래에 와서는 증열기 ·조유기() ·유염기(揉) ·재건기() ·정유기() ·건조기 등을 사용하여 차를 제조한다.


그렇게 녹차 체험이 끝나고 직접 만드셨다는 맛있는 '엿'을 한조각 입안에 물고는 위원장님댁을 한바퀴 휘~ 둘러봤다.
오후 햇살일 받아서 더 운치 있어뵈는 풍금과 아코디언...
그리고, 햇살에 말리고 있는 버섯? 장아찌? 와 마당을 가로지르는 돌 징검다리...
한켠의 우물과 다른 한 쪽에 잘 말려있는 멍석... 그 뒤로 보이는 장독대...

어느것하나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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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실댁이다. 현 이용훈 대법원장이 수학했던 곳이라 한다.
메밀을 빻는 도구, 반닫이, 경대, 호롱불 등잔, 각종 사기그릇, 짚신, 밀짚모자 등의 진기한 물건들이 가옥 곳곳에 가득 보관되어 있다.
갓을 담아 놓은 갓집도 보인다. 좌측 방은 나무 장판이 깔려있고 뒤편에는 침실 방이 놓여있다.
이 가옥에는 벽장이 있는데 침실방 벽장에는 이불이 놓여있고, 장판이 깔려있는 좌측방엔 서책이 놓여 있다.
벽장을 열어본 순간 보물을 찾은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 곳 마루는 ㄱ자로 옆까지 놓여 있는 것이 특징이며, 해가 떠도 마루까지 햇살이 들어오지 않도록 처마를 놓은 것이 독특하다.
이렇게 시원하고 풍경좋은 곳에서 공부를 하면 머리에 쏙쏙 들어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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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휘~~~익 한 바퀴 돌고나니 뱃속에서 신호가 온다. 밥 달란다. -.-;
오늘 저녁은 각종 나물과 돼지고기, 그리고 낮에 만들어놓은 대통밥이다.
꽤 작아보여서 2/3이상을 채웠는데 숟가락으로 파도파도~ 끝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밥이 나온다...
요술 대통밥인가보다...ㅋㅋ
그래도, 나 다 긁어먹고 밥 더 챙겨다가 남은 나물들로 비빔밥 또 먹었다.... 누가 돼지띠 아니랄까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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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서 제3회 두 그루 철쭉 축제를 축하해주기위한 공연이 마련되었다.

인도의 음악을 알리기위해 왔다는 '집시'느낌의 이 분들은
그러나 나라만 다를 뿐이지 그 나라의 전통음악을 성심성의껏 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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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 반가운 얼굴들이다.
지난 한국관광공사 구석구석 찾아가기 순천/보성 편에서 공연을 했던 그 친구들이다.
남도의 가락을 참 맛깔나게 부르는 모습속에서 왜 그렇게도 이뻐보이는지.. ^^
그런데, 몇 곡 부르지 않고 노래가 끝난 후 급하게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못내 섭섭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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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무공스님의 긴~~~~~~~ 숨으로 이어지는 느린 대금연주는

낮에 보았던 열화정에서 "청~~~산~~~"을 읊조리는 선비와도 흡사했다.

우리 전통 악기중에서 꼭 배우보고 싶었던 악기가 저 대금이었다.

굵고 낮게 이어지는 음률에서 풍류를 느껴본다.


그 다음은 가장 신명나고 즐거웠던 풍물놀이.

가슴까지 울리는 북소리와 머릿속을 맑게 해주는 꾕과리소리...

태평소의 장단이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듯 하다.


어설프지만 함께 따라불렀던 '사랑가', '도깨비타령?'.

그리고, 모두가 하나되어서 우리도 북채를 들고 북을 치고 장구를 두드리며 신명나는 한판을 벌였다.


그렇게 강골마을에서의 첫째날이 깊어갔다.


컬컬한 막걸리와 돼지고기로 못다한 이야기꽃을 피우고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담고 우리는 둘째날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Posted by 사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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